창작콘텐츠 공모전

  • (장려)후원기관상

내일

  • 수상연도 :

    2021년

  • 부문 :

    인식제고콘텐츠

  • 수상자 :

    김상진

내일


유독 말수가 적은 아이였다.
누굴 닮았는지 아들 녀석은 또래의 아이들과는 달리 어린 시절부터 과묵했다. 아내는 심심하고 고루한 나를 빼닮았다 하였고 어머님은 그래도 남자는 말이 없는 편이 낫다고 말씀해 주셨다. 그나마 다정하고 싹싹하던 아내가 엄마 역할을 잘 해주어 아들은 별 탈 없이 유치원을 그리고 초등학교 생활을 이어나갔다. 
아들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될 무렵. 나는 이혼을 했고 싱글대디가 되었다. 아직 엄마의 손길이 절실한 큰 아들과 작은 딸아이를 칠순의 어머님께 맡겨둔 채 밤낮으로 일하느라 바빴다. 내성적인 큰 아들에게 태권도며 수영등 스포츠 학원을 다니게 해 준게 내가 한 아비노릇의 전부였다. 돈이 있어야 아이 둘을 잘 키울 수 있다는 강박에 투잡까지 뛰게 되었다. 그러는 사이 나의 아들이 병들어 가고 있다는 것을 꿈에도 상상 하지 못했었다. 
“아범아! 훈이하고 이야기 좀 해보거라. 핸드폰 중독인지 뭐신지 요즘 핸드폰을 들고 놓지를 않는다니까!”
어머님의 염려를 처음엔 그저 웃어 넘겼었다.
불혹의 나조차 게임이며 유투브를 보다 보면 빠져들기 마련인데 초등학생 남자 아이에게 핸드폰은 인터넷은 얼마나 즐거운 곳일까 싶었다.
하지만 초등학교 5학년이 되고서는 아이는 점점 자신의 방안으로만 숨어 들었다. 혹시 TV에서만 보던 학교 폭력을 당한 것일까? 잠든 아들의 몸을 구석구석 살펴보았다. 누군가에게 맞거나 다친 흔적은 찾을 수 없었고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소심하지만 또래보다 한 뼘은 큰 키에 운동도 잘하는 내 아들이 맞고 다닐 리 만무하다며 사춘기가 온 것이구나 혼자 짐작만 하였다.  
하지만 얼마 후부터 아들은 마치 핸드폰과 하나가 된 듯 행동하였다. 비밀번호까지 걸어 둔 핸드폰을 제 손에 꼭 쥔 채로만 움직였고 밥을 먹을 때에도 아들의 시선은 핸드폰을 향하고 있었다. 잠을 잘 때도 아들의 머리맡엔 핸드폰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가족들에게 인사조차 하지 않는 날이 늘어났고 나는 그제야 아들을 추궁하기 시작했다. 아들은 묵묵부답이었지만 못나도 아빠는 아빠인지라 나는 알 수 있었다. 
사춘기가 아니라 내 아들에게 정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아들의 휴대폰을 강제로 빼앗아 뒤지기 시작했다. 어른들이 보는 동영상을 보는 것은 아닐까. 혹시 인터넷 도박 같은 것에 빠진 것은 아닐까. 별별 생각들이 다 스쳐 지나갔다.
카톡이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두가 쓴다고 말할 수 있는 모바일 메신저. 그 카톡이라는 창속에 사랑하는 나의 아들은 발가벗겨져 있었다. 아들은 하루에도 수십 번 대화방에 초대 되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자신의 욕설을 주고받는 친구들 아니 다른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야만 했다. 대화를 읽지 않거나 대화방에서 나가버리면 어김없이 또 초대 되었다. 어플을 다시 깔고 아이디를 바꾸어 보아도 원치 않는 초대는 계속 되었다고 했다. 
끔찍했다. 아직 어린 아이들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아이들의 대화 내용은 악랄하고 잔인 했다.
엄마가 없다고. 말을 못한다고. 덩치가 크다고. 바보라고 놀려 대는 아이들의 대화에 아이는 잘 듣고 있다는 답변까지 남겨야 했다. 모바일을 통한 수개월의 따돌림과 언어폭력에 내 아이는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온 밤을 하얗게 지세우고 부랴부랴 학교로 달려갔다.  
훈이를 때리거나 놀린 아이들은 없다고. 우리 반 아이들은 모두가 친하다며 외려 반문하시는 담임선생님께 아들의 핸드폰을 보여 드렸다. 아들에게 모바일로 언어폭력을 가한 아이들 몇몇이 교무실로 불려 왔지만 모두 입을 맞춘 듯 장난이었어요라고만 대답하였다. 실제로 때린 적은 한 번도 없고 학교에서 놀린 적도 몇 번 밖에 없었다는 아이들의 말에 피가 거꾸로 솟는 것만 같았다. 현실의 진짜의 폭력이 오간 것은 아니니 좋게 좋게 넘어가자며 학교에서는 가해자 아이들에게 반성문 몇 장만을 받아 주었다.  
어른들보다 더 거친 욕설까지 쏟아내던 아이들에게 내 아들은 상처투성이가 되어 버렸는데 가해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학년 초 학급에서 인기가 많은 아이와 사소한 일로 다툰 뒤 시작 되었다는 메신저 폭력. 하루에도 수십 번씩 말도 안 되는 욕설과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아이는 참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메신저로 약속을 잡아 만나기로 해 놓은 날에도 아이는 혼자 나가 수 시간씩 기다려야 했고 그 아이들의 게임 캐릭터까지 키워주느라 밤을 새고 있었다. 
어찌 고작 12살인 아이들이 그럴 수 있나 싶어 놀랍기도 했지만 이렇게 일이 벌어질 때까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던 내가 아빠가 맞나 싶어 더 속이 터질 것만 같았다. 
허나 아비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빠인 내게 무엇인가를 한 번도 부탁한 적 없었던 아들은 그렁그렁 눈물을 머금고 나에게 말했다.
“아빠! 나 학교 안다니고 싶어요. 이사도 가고 싶어요…….” 
청천벽력 같은 아들의 청을 흔쾌히 들어 줄 수가 없었다. 초등학생이 학교를 그만두면 어쩌겠단 말인가. 등하교를 함께 하고 핸드폰도 바꾸어 주었지만 아들은 점점 새카맣게 말라갔다. 결국 정신과 상담까지 받게 되었고 가해자인 아이들과 함께 학교를 다니는 것이 아이에겐 지옥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의사선생님의 이야기에 나또한 오열하고 말았다. 전셋집을 빼지도 새직장을 구하지도 못하였지만 서둘러 아이의 손을 잡고 월세 방으로 이사를 하였다. 그리 살던 곳과 다니던 학교까지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 왔지만 메신저 폭력에 의한 후유증으로 모든 의욕과 자존감을 잃은 아이는 한동안 방구석에서 하릴없이 천장만 바라보며 누워 있었다. 
마치 내일이라고는 없는 노인처럼 무인도에 혼자 남겨진 사람처럼…….
말문도 마음의 문도 닫아 버린 아들을 어쩌지 못해 매일매일을 속으로만 울었다. 아이의 정신이 다시 건강해 지기만을 바라며 나는 억지로라도 시간을 만들어 아이와 함께했다.
“훈아! 아빠랑 놀자~” 
집 앞 공원에서 아들이 제일 좋아하는 축구를 하며 지냈다. 축구경기도 관람하러 다니고 아들과 둘이서만 영화도 보고 외식도 하러 다녔다. 공부는 못해도 좋고 학교도 안다녀도 괜찮다고 항상 말해 주었다. 현실에서도 인터넷 속에서도 언제 어디서든 무슨 일이 생겨도 아빠가 곁에 있을 테니 안심해도 된다는 아빠의 말에 아들은 어느 날 조용히 웃어 주었다.
그리 벌써 3년여가 흘렀고 아이의 어두웠던 얼굴도 조금씩 양지를 되찾아 가고 있다. 
사이버 폭력. 
그것은 연예인들이나 겪는 일인 줄만 알았다. 
폭력이란 것은 서로 대면한 채 육신에 상처를 입히는 것인 줄만 알았다. 허나 아이가 당한 사이버 폭력과 따돌림은 무력으로 인한 폭력만큼이나 커다란 두려움과 공포였다. 
인터넷 세상에서 일어나는 폭력은 피해자에겐 실로 고통스런 일이지만 가해자들에겐 그저의 장난과 놀이였다.
얼마나 무시무시한 일인가. 
누군가는 깊은 상처를 입었지만 인터넷이란 이유 하나만으로 죄를 지은 사람이 스스로 면죄부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은.   
너무도 소중한 내 아이의 아픔조차 헤아리지 못했던 모자란 아빠인 나이기에 나는 여전히 사이버 폭력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과 근절시킬 수 있는 방안을 잘 알지 못한다. 다만 부모로서 아이에 눈높이에 맞추어 대화 할 수 있다면 또 시간을 같이 많이 보내며 아이를 조금이라도 더 이해할 수 있다면 내 아이에게 일어난 변화를 누구보다 빨리 알아챌 수 있으리라 여긴다. 
또한 인터넷이 주는 유용함과 즐거움만큼 인터넷 윤리를 인터넷을 올바르게 지키고 사용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이제는 철저한 교육이 필요할 것이다. 
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 키보드로 써내려간 나의 말 한마디가 가상의 세계라는 가면을 쓰고 죄의식도 없이 던진 나의 장난이 누군가에겐 처절한 아픔과 시련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또 그 아픔과 고통은 내게도 부메랑이 되어 돌아 올 수 있다는 것을 우리가 우리의 아이들에게 엄중히 일러 주어야 할 것이다. 인터넷과 더불어 살아가야만 할 우리 아이들의 내일을 위해서라도 사이버 폭력에 대한 예방과 교육은 더 이상 늦어서는 안 될 것이다.